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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Gallery/1200-1500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The Arnolfini Portrait)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The Arnolfini Portrait), 1434년

참나무에 유화, 82.2*60cm


내셔널 갤러리를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이며 미술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요한 그림인 동시에, 우리나라 방송 "무한도전"이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등에도 소개되어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에 살았던 이탈리아 출신의 상인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를 그린 초상화라고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이 유명한 첫번째 이유는 결혼에 관한 다양한 상징들이 그림 곳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먼저 그림 앞 쪽에 남자가 벗어놓은 신발이 보인다. 신발을 벗었다는 것은 이 곳이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남녀 주인공 사이에 있는 강아지는 인간에게 충성하는 동물이므로 결혼 생활에 대한 "정절"을 나타낸다. 그리고 창가에 놓여 있는 사과는 "원죄"를 의미하는데 이브의 권유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므로 여성은 그 죄를 갚기 위해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황동 샹들리에에 불 켜진 초가 하나인 것 역시 "신성한 결혼"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천치창조가 빛에 의해서 시작되었듯이 결혼도 단 하나의 촛불로 시작한다는 의미이며, 거울에 그려진 10개의 예수의 고난상과 크리스탈 묵주는 각각 "고난"과 "순결"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화가가 생각하는 행복한 결혼이란 "신성한 결혼이라는 약속을 두 사람이 성실하게 지켜나가며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하고, 살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예수의 고난을 떠올리며 참고 견디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이 그림은 일종의 결혼선언문과 같은 성격을 지니며 그래서 거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랑, 신부 외에 두 사람이 더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얀 반 아이크, 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얀 반 아이크의 조수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림에 보면 라틴어로 "1434년 얀 반 아이크가 여기에 있었노라"라는 글귀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단순히 저렇게 다양한 의미가 그림 속에 숨어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이 그림이 바로 "유화"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유화 이전에는 "프레스코화"와 "템페라화"가 있었다. 프레스코화는 건물에 회벽을 칠하고 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그림과 벽이 함께 마르게 하는 방식인데 수정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템페라화는 물감을 개는 재료로 달걀의 노른자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이렇게 하면 그림이 빨리 마르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 물감을 개는 재료를 달걀에서 기름으로 바꾸자 물감의 마르는 속도가 현저하게 늦어지면서 그림을 자세히 그릴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정도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감상할 때 중점적으로 봐야 할 점은 얼마나 자세히 묘사했는가이다.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크지 않은 그림 속에 어떻게 저런 것을 다 그려넣었을까 싶게 자세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 옷의 질감이나 강아지 털 등의 사실적 표현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을 그린 얀 반 아이크를 네덜란드 르네상스의 개척자이며 "유화를 집대성"했다고 표현한다. 어떤 책을 보면 얀 반 아이크가 유화를 발명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유화라는 방식은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얀 반 아이크는 유화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켜 유화라는 방식이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림 속 주인공 아르놀피니 부부는 큰 부를 일군 사람들이었는데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우와 이 사람들 엄청나게 돈이 많구나"하고 느끼기를 은근히 바랐을 것이다. 그런 의도를 간파하여 화가는 주문자의 마음을 읽어 그림의 주문이 계속 이어지도록 주문자의 부를 암시하는 표현들을 곳곳에서 하고 있다. 

창 밑 가구 위에 놓인 과일은 오렌지이다. 오렌지는 지중해 과일인데 이 그림의 배경이 되는 알프스 이북에 오렌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주인공의 부를 보여준다. 우리 어릴 적에 바나나가 비쌌던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까. 그리고 신부가 밟고 있는 카페트는 값비싼 터키 카페트인데 당시 터키산 카페트는 너무 비싼 물건이라 보통 벽에 걸어두는 장식용으로 쓰였는데 이 부부는 얼마나 돈이 많은지 그 카페트를 밟고 서 있다. 마지막으로는 신부의 복장. 많은 사람들이 신부가 임신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임신한 것이 아니고 저렇게 옷을 여러 겹 겹쳐입는 것이 당시 유행복장이면서 또한 부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보다 보면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와 알프스 이북 플랑드르 지방의 미술이 얼마나 달랐는지가 조금은 보이는 듯하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마치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에 색을 입힌 것처럼 사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묘사가 특징이고 이를 위해서 원근법이 발달한 반면, 알프스 이북에서는 엄격한 수학적 원근법 보다는 세밀한 묘사와 상징성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것이다.

보통은 여기에서 설명을 마치는 편인데, 좀 더 깊이 들어가 볼 때도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것인데 처음에 이 그림은 플랑드르 지방에 살던 지오반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고 설명했지만 지금은 누구를 그린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봐도 작품의 제목을 <The Arnolfini Portrait(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무슨 말일까? 지오반니 아르놀피니는 실존인물이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1434년에는 첫번째 부인과는 사별하고 두번째 부인과는 아직 결혼하기 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와의 결혼을 그린 것이란 말인가? 

세 가지 정도의 설명이 가능한데 첫번째는 이 그림의 주인공은 지오반니 아르놀피니가 아니라 그의 동생을 그린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지오반니 아르놀피니는 이탈리아 출신인데 알프스 이북으로 건너와 크게 성공한 뒤 이탈리아에 있던 가족들을 다 불러 함께 살았다고 하니 그 가족 중 한 명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이 있고 두번째는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보고 이건 결혼 그림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이다. 서양의 일반적인 결혼에서는 두 사람이 악수하듯이 서로 오른손을 맞잡는다고 하는데 이 그림에서 보면 남자의 왼손이 여자의 오른손을 잡고 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결혼이 아닌 부정한 결합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불켜진 초가 남자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죽은 아내를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그림 속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일까. 이 그림 앞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차분히 감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