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로마노 전투(The Battle of San Romano)
우첼로(Paolo Uccello)
산 로마노 전투(The Battle of San Romano), 1438-40년
포플러나무에 템페라, 182*320cm
제목 그대로 산 로마노에서 벌어졌던 전투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13세기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육상 상업도시로 성장한 피렌체가 피사항에 대한 접근권을 두고 시에나와 1432년 산 로마노에서 전투를 벌였고, 승리를 거둔 피렌체의 메디치가에서 우첼로에게 의뢰해 그려진 총 3부작 중 한 편이다. 나머지 두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과 우피치 미술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우첼로는 당시 "원근법에 푹 빠져 있었던 화가"로 흔히 묘사되곤 한다. 16세기 중반 바사리가 쓴 <예술가들의 생애>에 우첼로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우첼로 부인이 밤에 자다가 깨어 보면 남편 우첼로는 자지 않고 방 안을 혼자 서성이며 "원근법은 참 위대한 거야"라고 혼잣말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첼로를 비롯한 이탈리아 화가들을 잠 못 이루게 했던 원근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원근법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개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발달했던 원근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설명할 수 있다.
첫번째로 "소실점"으로 흔히 표현되는 선원근법. 두번째로는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선명하게, 멀리 있는 것은 작고 희미하게 그리는 대기원근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축법이라는 것인데 이 것은 사물이 화가에게 보이는 대로 그리는 방법으로 가까이 있는 부분은 과장될 정도로 커지고 다른 부분은 매우 작게 표현되기 마련이다. 단축법이 적용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를 꼽을 수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원근법이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어서 15세기 이탈리아 화가들이 왜 그렇게 원근법에 열광했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 위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원근법이 최초로 적용된 작품으로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로 보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원근법을 보통 "수학적 원근법"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사물을 변형시킬 때 화가가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수학적 비례의 원리에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다빈치가 남긴 원근법 스케치를 봐도 얼마나 엄격하게 비례의 원리를 적용시켰는지 알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화가 우첼로는 이런 흐름에 동참했을 뿐 아니라 그 누구보다 열심히 원근법을 연구했던 화가였다.
그래서 이 작품 <산 로마노 전투>의 역사적 의의 또한 원근법이 적용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원근법이 어디에 적용되었을까?
먼저 그림의 아래쪽을 보면 부러진 창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소실점을 이용한 선원근법이 비교적 잘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멀리 있는 인물들을 작게는 그렸으나 너무 선명하게 그렸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갑옷입은 병사의 비율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늘날 "원근법이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현실감과 박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첼로는 왜 이렇게 아쉬운 작품을 남길 수 밖에 없었을까?
원근법의 세 가지 방법은 역사적으로 동시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게 되는데 이 그림이 그려진 1438년에는 대기원근법이나 단축법이 아직 완성되기 전이었다. 즉 우첼로가 가진 역사적 한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근법을 적용해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우첼로의 노력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림은 전투장면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림에서 받는 느낌은 매우 장식적이라는 것이다. 병사들 뒤로 보이는 장미와 오렌지들, 백마를 탄 피렌체군을 이끌던 토렌티노 장군의 화려한 모자, 이제는 색이 바랬지만 처음에는 눈부시게 빛났을 금과 은박 장식 등은 마치 태피스트리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그림은 최근까지도 메디치 가에서 의뢰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2000년 새로운 연구를 통해 이 그림을 의뢰했던 사람은 레오나르도 바르톨리니 살림베니였으며, 1483-1484년 사이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살림베니의 자손으로부터 가져갔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그러는 과정에서 원래 아치형이었던 그림의 상부가 사각형으로 잘려졌다고 하니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