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Raphael)
율리우스 2세의 초상(Portraint of Pope JuliusⅡ), 1511년
포플러나무에 유화, 108.7*81cm
르네상스 시대 3대 천재화가라고 하면 보통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를 꼽는다. 세 명을 간단히 비교해 보자면, 모두 훌륭한 화가인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다 빈치는 관심사가 너무나도 많아 완성작이 적다는 아쉬움이 있고, 미켈란젤로는 회화보다는 조각에 더 심취해 있었고 성격도 괴팍해서 의뢰인들과 충돌도 잦았지만 라파엘로는 인물도 좋고 성격도 무난해서 당시 의뢰인들이 무척 선호하는 화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7살 생일에 요절을 하게 되는데 <율리우스 2세의 초상>은 라파엘로가 29세 때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해 바사리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진실되어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 마치 그가 살아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라고. 이렇게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는 율리우스 2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율리우스 2세는 별명이 "무서운 교황" 혹은 "전사 교황"이었는데 이탈리아 내에서 교황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1503년부터 1513년까지 10년간 교황이었는데 1511년에는 직접 전투에 참여했지만 패하고 교황령이었던 볼로냐 지방을 상실한 후 분한 마음에 수염을 기르기 시작해서 1512년 3월에 잘랐다는 기록이 있어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더 확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513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지만 무섭기만 한 교황은 아니었고 미술사에 엄청난 업적을 남기게 되는데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게 하고, 라파엘로에게 <아테네 학당>을 그리게 한 것도 역시 교황 율리우스 2세였다.
이 그림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는데 일단 정면 초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초상화는 그려지는 대상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기에 위엄있는 정면상이 보통인데 이 그림 속 주인공은 약간 측면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교황의 얼굴과 옷의 단추들 그리고 오른손까지 그림의 중심선에 위치해 있어서 격을 잃지 않고 있으면서 동시에 교황을 옆에서 자세히 바라보게 해 교황에 대한 인간적인 친근감까지 느끼게 하고 있으니 훌륭한 구도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이 그림을 보았을 때에는 좀 불만이었다. 라파엘로에게 기대하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어서였을까. 그림의 크기도 크지 않고 그림 속 교황도 심술궂고 깐깐한 노인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림 속 교황이 슬퍼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볼 때마다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들에게 교황의 성격이 어떻게 보이냐고 물어봤을 때 정말 다양한 대답이 쏟아지는 걸 보고 이게 라파엘로의 저력인가 싶었다.
그리고 라파엘로의 표현력 또한 대단했다. 교황의 수염과 옷 그리고 옷 가장자리의 털까지 모두 같은 하얀색이지만 질감의 묘사가 뛰어나 모두 다르게 느껴졌고, 교황 왼손의 단축법 묘사는 내셔널 갤러리 8번 방에 있는 동시대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해 봤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녹색과 빨간색, 그리고 흰색과 황금색 만을 쓰는 절제된 색채의 사용과 선명한 보색대비로 인해 강렬하고 현대적인 인상도 받게 된다. 그림 속 녹색 바탕을 보면 교황의 상징물인 삼중관과 천국의 열쇠를 그렸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운 흔적이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많은 이본들 속에서 이 그림이 원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교황이 앉은 의자 기둥의 종모양 장식은 도토리이고 도토리는 떡갈나무의 열매인데 떡갈나무는 이탈리아어로 로베레(rovere)이다. 이 것은 율리우스 2세가 교황이 되기 전에 로베레 추기경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그림은 17세기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 구도에도 영향을 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속 교황 인노켄티우스는 당시 70세였다고 하는데 눈빛의 강렬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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