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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Gallery/1500-1600

대사들(The Ambassadors)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년

참나무에 유화, 207*209.5cm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물어본다면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더불어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을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내셔널 갤러리의 4번 방을 늘 지키고 있던 작품 <대사들>이 2015년 특별전을 위해 한동안 그 자리를 비웠을 때, 6개월에 걸친 내셔널 갤러리의 파업까지 더해져서 내셔널 갤러리에 갈 때마다 왠지 허전했던 기억이 난다.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미술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는데,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맞서 일어난 것이 종교개혁이다 보니 교회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을 개신교 측에서는 탐탁치 않게 여겼다. 당시 개신교 교회 내부를 그림으로 남긴 산레담의 작품을 보면 개신교 교회가 가톡릭 교회에 비해 얼마나 소박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그림 주문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교회로부터의 주문이 줄어들게 되었고 화가들은 종교화 대신 정물화, 풍경화 등 세속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그 외 다른 자구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초상화에 뛰어났던 한스 홀바인은 1526년 에라스무스의 추천서를 들고 영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는데, 1526년이면 유럽 본토에서는 르네상스 미술이 시작되고 100년이 다 되어갔지만 영국은 아직도 중세 미술을 그리던 시절이었기에 한스 홀바인은 영국으로 건너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1536년부터는 헨리 8세의 궁정 화가가 되어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이 그림은 한스 홀바인이 궁정화가가 되기 전인 1533년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의 왼쪽편에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사람은 당시 주영 프랑스 대사였던 장 드 댕트빌이다. 1533년은 헨리 8세가 앤 볼린과 비밀 결혼식을 올리면서 가톨릭과 갈등을 빚던 시절이었고, 프랑스는 "가톨릭의 장녀"라고 불릴 정도로 교황과의 관계가 밀접했기에 분열 조짐을 보이는 영국교회가 가톨릭 교회 내에 머물 수 있도록 외교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장 드 댕트빌의 임무였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던 장 드 댕트빌에게 프랑스에서 친구 조르주 드 셀브가 찾아오자 그 고마움과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당시 가장 유명했던 화가 한스 홀바인에게 의뢰하여 그려진 것이 바로 실물 크기로 그려진 최초의 2인 초상화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대사들>이라는 작품이다.

그림을 들여다 보면 두 사람 사이에 이단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다양한 물건들을 늘어놓아 두 사람의 경제적 여유와 더불어 충만한 지적 교양상태까지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먼저 위의 탁자를 보면 정교하게 짜여진 값비싼 터키 카페트 위에 각종 천체와 항해도구들이 보이는데 이는 당대 문화의 표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아래 탁자에는 지구의와 함께 T자 모양 책갈피로 반쯤 펼쳐놓은 수학책과 악기 류트, 그리고 류트 앞에는 성가집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류트의 줄이 끊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구교와 신교가 서로 대립하는 상황과 함께 장 드 댕트빌의 영국에서의 임무가 실패로 끝날 것임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그림 아래쪽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물체이다. 눈이 밝은 사람은 단번에 "해골"이라고 알아보기도 하지만 간혹 그림의 오른쪽 옆까지 걸어 가서 본 이후에도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두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저렇게 큰 해골은 왜 그려 넣었을까? 그리고 왜 특정 위치에 가야만 해골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걸까?

해골의 모습이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왜곡기법(왜상기법: Anamorphosis)"때문이다. 이는 원근법이 극단적으로 발전된 형태인데, 장 드 댕트빌이 이 그림을 의뢰하면서 나중에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면 폴리시에 있는 자신의 성에 걸겠다는 말을 듣고 이 그림을 층계벽에 걸어놓았을 때 이 그림을 오가며 보게 되는 사람에게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는 허망한 것이며 우리의 종착역은 결국 죽음임을 기억하라"는 말을 화가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한스 홀바인은 그것으로 말을 끝맺지 않고 그림 왼쪽 위 구석 녹색 커텐 뒤에 구원의 십자가상을 그려 넣어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림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는데 그림 속에 두 사람의 나이가 적혀 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4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두 사람의 실제 나이가 장 드 댕트빌은 29세, 조르주 드 셀브는 25세였다고 한다. 장 드 댕트빌의 나이는 그가 쥐고 있는 칼집에 아라비아 숫자로 29라고 적혀 있고, 조르주 드 셀브의 나이는 그가 오른팔로 기대고 있는 책의 옆면에 씌어 있다.

그림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그것을 표현하는 한스 홀바인의 놀라운 기교에 놀라면서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한스 홀바인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