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치노(Bronzino)
비너스와 큐피드가 있는 알레고리(An Allegory with Venus and Cupid), 1545년
나무에 유화, 146.1*116.2cm
브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가 있는 알레고리> 혹은 <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라는 작품은 내셔널 갤러리 8번 방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들과 선명한 색상 그리고 관능적인 분위기까지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피렌체의 코시모 데 메디치가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에게 선물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탈리아 문화의 화려함을 열망하며 호색한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한편으로 문장학과 의미심장한 상징풀이를 좋아했던 왕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완벽한 선물이었다. 그림의 상징적 의미를 풀어내는 것은 자칫 음란해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을 하나하나 꼼꼼히 탐구하는데 더 없이 좋은 빌미였을 것이다.
이제 찬찬히 그림 속에 브론치노가 숨겨놓은 여러가지 상징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 위 오른쪽 노인은 어깨 위에 모래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제우스의 아버지 시간의 신 크로노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크로노스는 그림 속에서 모래시계나 낫을 갖고 있는 날개달린 노인으로 묘사되는데 노인의 어깨 위에 그려진 모래시계는 "시간, 세월"을 의미한다. 반대쪽 여성은 마치 가면처럼 얼굴의 앞부분만 있고 기억을 담당하는 뇌가 없어서 "망각"을 상징한다고 해석되는데 "망각"은 파란 천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고 하지만 "시간"이 그것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크로노스 밑의 귀여운 소년은 "쾌락"을 의인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년이 손에 쥔 것은 장미꽃잎인데 유럽에서는 예로부터 장미꽃잎은 "쾌락"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이는 아름답게 활짝 피었다가 허무하게 시들어가는 모습이 그 속성상 "쾌락"과 유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소년의 오른발을 자세히 보면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있지만 "쾌락"에 빠진 소년은 아픔도 느끼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다.
소년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소녀는 "기만"을 의미한다. 이렇게 예쁜 소녀가 왜 "기만"인가 싶겠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순진한 얼굴에 한 손에는 벌집을 다른 손에는 독이 든 전갈을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렁이 몸통에 사자 다리를 그려넣어 "기만"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소년의 발 아래에는 가면이 두 개 보이는데 이는 "색욕"을 상징한다. 남자의 가면은 늙은이, 여자의 가면은 젊게 표현했는데 당시 화가들 사이에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은 믿을 수 없는 육체적 욕망의 결합일 뿐이라고 보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대각선 위치에 놓여있는 "망각"과도 좋은 쌍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의 가장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비너스와 그의 아들 큐피드이다. 비너스를 나타내기 위해 그녀의 상징인 비둘기를 그림 왼쪽 구석에 그려 넣었고 왼손에는 황금사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비너스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소년은 날개와 화살통을 가지고 있으며 비너스가 화살 하나를 뽑아든 것에서도 아들 큐피드임을 보여 준다. 그런데 모자관계인 두 사람의 야릇한 자세와 눈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큐피드 왼쪽에서 머리카락을 뒤집으며 괴로워하는 노파는 한동안 "질투"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16세기 신세계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매독"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에는 매독의 치료제로 수은을 사용했는데 수은 중독된 사람의 피부색이 저렇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이 그림의 상징적 의미는 "쾌락과 기만 그리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수반하는 사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브론치노는 이 그림이 단순히 야한 그림으로 보이지 않도록 많은 고심을 한 흔적이 보이는데 먼저 쭉 뻗은 크로노스의 오른팔과 "쾌락"을 상징하는 소년 그리고 니은자로 구부러진 비너스를 연결해 안정감을 주는 사각형 구도를 구사하고 있다. 게다가 비너스의 몸을 눈부실 정도로 희게 그려 대리석같은 질감을 나타내고 배경으로 푸른색을 배치하고 있어 차가운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매우 교훈적이면서도 작품 전체에 서정성이 흐르고 색감도 아름다운 훌륭한 작품이다.
'National Gallery > 1500-16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커스와 아리아드네(Bacchus and Ariadne) (0) | 2017.10.17 |
---|---|
대사들(The Ambassadors) (0) | 2017.10.03 |
예수의 매장(The Entombment) (0) | 2017.09.20 |
율리우스 2세의 초상(Portraint of Pope JuliusⅡ) (0) | 2017.09.19 |